- [ 詩 48 ] 어머님에의 獻詩
- 받는이 : 이원점 엄마
- 작성자 : 막내딸 명옥이 2006-02-22
어머님에의 獻詩
- 나이가 들어서 하는
박두진
오래 잊어버렸던 이의 이름처럼
나는 어머니 어머니 라고 불러보네.
어머니 어머니 하고 불러보면
나는 먼 엣날 어렸을 때의 어린아이로 되돌아가네.
그리고 눈물이 흐르네.
내가 이 세상에서 처음 입을 뗄 때
부르던 첫말
그 엄마 지금은 안계시고
이만큼이나 나이가 들어서야
어머니 어머니라는 이름의
뜻의 깊이를 아네.
애뙤고 예쁘셨던
꽃답고 아름다우셨을 때의
어머니 보다는
내가 빨던 젖이
빈 자루처럼 찌부러지고
이마에는 주름살
머리터럭 눈같이 희던 때의
가난하고 슬프신
그 모습 더 깊이 가슴에 박혀
지금도 귀에 젖어
음성 쟁쟁하네.
지금 이렇게 나 혼자 외로울때
나 혼자 괴로울 때
마음 이리 찢어지고
불에 타듯 지질릴 때,
그 어머님 지금
내 곁에 계시다면
얼마나 힘이 될까
얼마나 위로가 될까
얼마나 조용조용 드리고 싶은 말씀이 많을까.
어머니 어머니
오래 오래 잊어버렸던 이의 이름처럼
지금은 이미 없는
머나먼 이름
뜨거운 이름
눈물의 이름
사랑의 희생의 영원의 이름
이제사 그 어머니
어머니라는 부름의 뜻을 알겠네.
어머니라는 이름
뜨거운 눈물의 이름을 알겠네.
---------
엄마,
엄마는 자식 여섯을 키우면서 매 한번 안들고 키우셨지요...
내가 기억나는 몇 안되는 엄마의 야단... 들어보세요..
#1
고등학교 땐가 성적이 떨어졌을 때
뒤돌아 앉아서 깊은 한숨을 내쉬던 엄마.....
그때 엄마의 한숨이 아직도 기억에 남아있어요.
눈물보다 더 가슴을 아리게 했고
회초리보다 더 마음을 아프게 했던
엄마의 한숨.......
#2
엄마가 큰오빠하고 싸웠을 때,
내가 엄마편을 든다고 대신 큰오빠한테 달려들었는데,
그때 엄마가 되레 나를 야단치셨던 거...
#3
고등학교 때 내가 학원에 다닌다고 했을 때...
엄마는 집에서 과외하지 밖으로 나돌지 못하게 하셨지요...
#4
내가 남녀공학 간다고 했을 때..
여자대학 놔두고 기어이 남녀공학에 다닌다고 반대하셨지만, 결국 내 뜻대로 남녀공학에 갔고..
학보사 활동한다고 밤늦게 다녀서 학교다니지 말라는 말씀도 심심치 않게 들었었지요....
왜 하필 좋은 기억 놔두고 야단맞았던게 기억나는지 모르겠네...
엄마도 기억나세요?
엄마는 아마도 나 야단치고는 밤새 가슴앓이를 하셨을테지요..
엄마는 내가 아버지없이 키우는 늦둥이라서 그랬는지 유난히 애지중지 키우셨지요.
지금 그랬다면, 완전히 왕따가 됐을만큼......
초등학교 때는 점심 시간에 매일 쟁반에다 밥을 날라다 주셨지요.
그리고, 중학교부터 고등학교 졸업할때까지 자가용으로 학교를 다니게 하셨고...
그렇게 부자집은 아니었지만 그 시절에는 쉽지 않았는데,
부족한거 없이 하고싶은거 다 해보게 시켜주셨구요...
시집갈 때도, 막내딸 기죽지 말라고 혼수며, 피로연, 신행 음식까지 님부럽지 않게 해주셨었는데...
그런데 엄마,
엄마는 나한테 최고의 엄마였는데,
나는 엄마한테 최고의 딸이지 못해서 어떻게 해요...
나는 엄마가 내게 해주신 것의 십분의 일,
아니 그 십분의 일의 십분의 일도 못했는데....
엄마
나는 이제 어떻게 갚아야 하지...?
엄마는 언제고 찾아가면 늘 그 자리에 계실줄 알았는데,
이렇게 덜컹 가시고 나면,
난 어떻게 갚으라고.........
엄마,
내가 이렇게 엄마에 관한 시를,
그리고 편지를 매일 쓴다한들
그게 엄마한테 무엇을 갚아드릴 수 있겠어요..?
내가 한달에 몇번씩 청아공원에 가봐야 무슨 소용이 있겠어요...??
내가 꼬박꼬박 엄마기일 챙기는게 무슨 의미가 있겠어요.....???
엄마 살아 생전에 한번 더 찾아가서,
엄마 손 한번 잡아보는게 더 나았을텐데...
엄마가 조금 더 있다 가라고
애처로운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실 때
엄마 곁에 더 눌러앉아 있는게 더 나았을텐데......
엄마,
죄송해요~!!
이렇게 뒤늦게 엄마한테 돌려드릴 수 있는게
고작 뜨거운 눈물 뿐이라니요...........
엄마,
엄마가 나한테 해주신 모든 거 평생 잊지않을게요....
엄마한테 감사드리는 마음 평생 간직할게요......
엄마,
사랑해요~!!
- 나이가 들어서 하는
박두진
오래 잊어버렸던 이의 이름처럼
나는 어머니 어머니 라고 불러보네.
어머니 어머니 하고 불러보면
나는 먼 엣날 어렸을 때의 어린아이로 되돌아가네.
그리고 눈물이 흐르네.
내가 이 세상에서 처음 입을 뗄 때
부르던 첫말
그 엄마 지금은 안계시고
이만큼이나 나이가 들어서야
어머니 어머니라는 이름의
뜻의 깊이를 아네.
애뙤고 예쁘셨던
꽃답고 아름다우셨을 때의
어머니 보다는
내가 빨던 젖이
빈 자루처럼 찌부러지고
이마에는 주름살
머리터럭 눈같이 희던 때의
가난하고 슬프신
그 모습 더 깊이 가슴에 박혀
지금도 귀에 젖어
음성 쟁쟁하네.
지금 이렇게 나 혼자 외로울때
나 혼자 괴로울 때
마음 이리 찢어지고
불에 타듯 지질릴 때,
그 어머님 지금
내 곁에 계시다면
얼마나 힘이 될까
얼마나 위로가 될까
얼마나 조용조용 드리고 싶은 말씀이 많을까.
어머니 어머니
오래 오래 잊어버렸던 이의 이름처럼
지금은 이미 없는
머나먼 이름
뜨거운 이름
눈물의 이름
사랑의 희생의 영원의 이름
이제사 그 어머니
어머니라는 부름의 뜻을 알겠네.
어머니라는 이름
뜨거운 눈물의 이름을 알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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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엄마는 자식 여섯을 키우면서 매 한번 안들고 키우셨지요...
내가 기억나는 몇 안되는 엄마의 야단... 들어보세요..
#1
고등학교 땐가 성적이 떨어졌을 때
뒤돌아 앉아서 깊은 한숨을 내쉬던 엄마.....
그때 엄마의 한숨이 아직도 기억에 남아있어요.
눈물보다 더 가슴을 아리게 했고
회초리보다 더 마음을 아프게 했던
엄마의 한숨.......
#2
엄마가 큰오빠하고 싸웠을 때,
내가 엄마편을 든다고 대신 큰오빠한테 달려들었는데,
그때 엄마가 되레 나를 야단치셨던 거...
#3
고등학교 때 내가 학원에 다닌다고 했을 때...
엄마는 집에서 과외하지 밖으로 나돌지 못하게 하셨지요...
#4
내가 남녀공학 간다고 했을 때..
여자대학 놔두고 기어이 남녀공학에 다닌다고 반대하셨지만, 결국 내 뜻대로 남녀공학에 갔고..
학보사 활동한다고 밤늦게 다녀서 학교다니지 말라는 말씀도 심심치 않게 들었었지요....
왜 하필 좋은 기억 놔두고 야단맞았던게 기억나는지 모르겠네...
엄마도 기억나세요?
엄마는 아마도 나 야단치고는 밤새 가슴앓이를 하셨을테지요..
엄마는 내가 아버지없이 키우는 늦둥이라서 그랬는지 유난히 애지중지 키우셨지요.
지금 그랬다면, 완전히 왕따가 됐을만큼......
초등학교 때는 점심 시간에 매일 쟁반에다 밥을 날라다 주셨지요.
그리고, 중학교부터 고등학교 졸업할때까지 자가용으로 학교를 다니게 하셨고...
그렇게 부자집은 아니었지만 그 시절에는 쉽지 않았는데,
부족한거 없이 하고싶은거 다 해보게 시켜주셨구요...
시집갈 때도, 막내딸 기죽지 말라고 혼수며, 피로연, 신행 음식까지 님부럽지 않게 해주셨었는데...
그런데 엄마,
엄마는 나한테 최고의 엄마였는데,
나는 엄마한테 최고의 딸이지 못해서 어떻게 해요...
나는 엄마가 내게 해주신 것의 십분의 일,
아니 그 십분의 일의 십분의 일도 못했는데....
엄마
나는 이제 어떻게 갚아야 하지...?
엄마는 언제고 찾아가면 늘 그 자리에 계실줄 알았는데,
이렇게 덜컹 가시고 나면,
난 어떻게 갚으라고.........
엄마,
내가 이렇게 엄마에 관한 시를,
그리고 편지를 매일 쓴다한들
그게 엄마한테 무엇을 갚아드릴 수 있겠어요..?
내가 한달에 몇번씩 청아공원에 가봐야 무슨 소용이 있겠어요...??
내가 꼬박꼬박 엄마기일 챙기는게 무슨 의미가 있겠어요.....???
엄마 살아 생전에 한번 더 찾아가서,
엄마 손 한번 잡아보는게 더 나았을텐데...
엄마가 조금 더 있다 가라고
애처로운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실 때
엄마 곁에 더 눌러앉아 있는게 더 나았을텐데......
엄마,
죄송해요~!!
이렇게 뒤늦게 엄마한테 돌려드릴 수 있는게
고작 뜨거운 눈물 뿐이라니요...........
엄마,
엄마가 나한테 해주신 모든 거 평생 잊지않을게요....
엄마한테 감사드리는 마음 평생 간직할게요......
엄마,
사랑해요~!!